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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특이한 장소

세계에서 유명한 버려진 유령 도시의 슬픈 이야기

by 잼미난블로그 2021.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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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생활하였던 도시 중에는 시간의 흐름, 경제적 이유, 자연재해, 인간으로부터 발생한 재해 등의 이유로 버려진 곳이 있습니다.



그 도시들은 더 이상 사람으로 인한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장소가 되었지만, 그 중에 일부는 인기 있는 광관 명소로 탄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버려진 도시 11개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몬세라트의 플리머스

 



 키츠 네비스 섬과 과들루프 섬 사이에 몬세라트 섬에 있습니다.



이 섬은 1600년대에 처음 사람이 거주했으며, 

수도인 플리머스는 섬의 남서쪽에 설립 되었어요.



1962년 몬세라트는 영국 식민지가 되었고,

1989년 9월 17일 기준으로 자연 재해가 닥쳤을 때 약 4,0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허리케인 휴고는 플리머스 항구의 돌 부두와 도시의 많은 건물과 학교,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병원 등을 무너뜨렸어요.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1995년 7월부터 수세기 동안 활동이 없었던 휴화산 수프리에르 힐스 화산에서 일련의 화산 분화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6월 25일 화산은 거대한 분화를 일으키며 떠거운 가스와 용암, 화산재를 분출하였으며, 도시의 일부가 묻히고 19명이 사망하기도 하였습니다. 



1997년 8월 4일부터 8일까지 5일 동안의  화산활동 결과로 플리머스의 건물들은 불에 탔고 1.4m 높이의 화산재에 묻혀버렸습니다. 



용암과 화산재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식물을 경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플리머스의 모든 주민을 이주시키기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어요.



섬의 안전한 지역에 거주하던 많은 주민들도 떠나기로 결정하였답니다.



2000년까지 섬 인구의 3분의 2가 섬을 떠났고, 오늘날에는 5,000명만이 남아있습니다.





2. 나미비아의 콜만스코프




1908년 철도선을 깔는 작업을 하던 독일 노동자들은 콜만스코프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독일 제국 내에서 광부들이 유입되기 시작합니다. 



채굴된 다이아몬드는 막대한 부를 가져왔고, 광부들은 병원, 발전소, 학교, 극장, 스포츠 시설, 얼음 공장 등으로 완성된 콜만스코프의 독일 마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콜만스코프는 다이아몬드와 관련하여 남반구에서 첫 번째 트램과 첫 번째 엑스레이 기계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발전했는데요. 



그러다 다이아몬드 노천 광산에서 다이아몬드가 고갈되기 시작하였고 1956년에 콜만스코프는 유령마을이 되고 맙니다.



모래는 집을 침공하기 시작하여 콜만스코프를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2010년 이 마을은 도시와 모래가 마을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텔레비전 시리즈 'Life After People'의 에피소드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3.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트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버려진 도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970년에 반경 2 km미만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근로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도시입니다. 



1986년 4월 27일 기준으로 49,000명의 주민,15개의 초등학교, 5개의 중등학교, 크고 잘 갖추어진 병원, 25개의 일반 매장, 10개의 체육관, 3개의 실내 수영장, 2개의 경기장, 그리고 놀이공원이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자정 직후 체르노빌 복합단지에서 4번 원자로가 폭발하여 위험한 방사선이 공중으로 분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자로 폭발 후 36시간 지난 후에야 당국은 프리피야트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켰고, 

정부는 피난 중인 주민들에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 하게 통제하였습니다. 



40km의 안전구역이 폭발한 원자로 주변으로 설정되었습니다.

프리피야트에 마지막으로 전기가 공급된 11시 55분을 기준으로 모든 전자제품의 기능이 정지하고,

시계의 초침은 11시 55분을 가리키며 멈추어 섰습니다. 



학교 바닥에는 아이들이 떨어뜨린 장난감과 학용품이 남아 있고, 세탁소에는 체르노빌에 근무했던 근로자들의 유니폼이 그대로 있습니다. 



도시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버려진 건물은 식물과 나무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사슴, 멧돼지, 엘크, 사슴이 거리를 배회하며 늑대, 여우, 살쾡이를 초식 동물을 노리는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안전지역 내의 토양의 방사선 수준을 체크하였지만  방사선 수치는 여전히 높았습니다.



Caesium-137은 오염된 풀을 먹고 자란 젖소의 우유에서 발견 되고

나무 열매와 버섯에서도 방사선 수치가 높게 잡혔습니다. 



오늘날 몇몇 투어 회사들이 프리피야트(Pripyat)로 방문객을 데리고 가는 여행 패키지를 만들어서, 버려진 학교, 병원 및 놀이 공원을 견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일본의 하시마섬




이 6.3 헥타르의 섬은 일본 남부 나가사키 시에서 동쪽으로 15km에 있습니다. 



하시마 섬은 해저 석탄의 광산을 지원하기 위해 1887 년에 만들어 졌으며, 1959년에 5,259명 인구가 거주하였습니다. 



섬에 지어진 구조물에는 아파트 블록, 학교, 병원, 시청, 영화관, 상점 및 수영장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1974년 석탄 매장량이 고갈되었고 하시마 섬 주민들은 떠났다.



이 섬은 향후 3년 동안 완전히 버려졌지만, 2000년대에 섬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2009년 4월에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였습니다. 



5. 뉴욕의 노스 브라더 아일랜드

 




뉴욕시의 이스트 강에는 노스 브라더 아일랜드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섬의 크기는 약 8 헥타르 정도이며, 무인도였습니다. 



1885년 리버사이드 병원이 천연두 환자를 격리하고 치료하기 위해 그곳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섬은 전염성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격리하는 데 사용되었고,

 메리 말론 또는 장티푸스 메리로알려진 그녀는 1983년 임종할 때까지 20년 이상 갇혀 있었던 일화도 가지고 있습니다. 



1943년부터 이 섬은 결핵을 가진 사람들을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국의 주택 부족으로 인해 지역 대학의 학생들을 수용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노스 브라더 아일랜드는 버려진 상태로 대중에게 외면받고 있습니다. 



섬안에 있는 건물 대부분은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으며, 폐허가 된 건물 주변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2016년 10월, 뉴욕 매거진은 이 섬을 공원으로 이용하기 위한 연구를 의뢰했다고 보도 했지만, 

현재는 해안 조류의 안식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6. 오스트레일리아의 위테눔




1937년, 광부 랭글리 핸콕은 위테눔 협곡에서 푸른 석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1940년까지 광부들은 수많은 석면을 땅에서 채굴하였고 , 1943년에는 자회사인 호주 블루 석면 회사를 통해 위테눔 광산을 인수까지 하게 되는데요.



세계 대전은 탱크, 비행기, 전함, 헬멧, 방독면에 사용하기위한 석면에 대한 필요성을 일으켰습니다. 



1951년까지 위테눔은 500명이상의 인구와 150채이상의 주택이 있었습니다.



1955년 석면 작업자는 폐암 발병 위험이 10배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1977년과 1992년 사이 Wittenoom에 8개의 개별적인 공기 감시 연구가 서호주의 보건부에 의해 실시됩니다. 



1978년 호주는 위테눔 주민들의 집, 기업 및 부동산을 매입하여 마을을 떠나도록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 3월에는 45명의 주민만 남게 되었습니다. 



호주 정부가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도시의 오염를 막기 위해서 243만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 되었으며, 이는 실용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 되었습니다. 



2006년 정부는 마을에 전원을 끄고 지도와 도로 표지판에서 마을의 이름이 삭제하였습니다. 



위테눔으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는 폐쇄되었고, 오늘날에는 한 명의 주민만 남아 있어 위테눔은 진정한 유령 도시가 되었습니다. 



7. 이탈리아의 크라코





이탈리아의 남동쪽 끝에는 기원전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크라코의 언덕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은 가톨릭 교회에 속한 마을이었습니다. 

1276년까지 이탈리아의 유명한 스포르자 가문의 일원인 무지오 스포르자(Muzio Sforza)의 소유였고, 1561년까지 크라코의 인구는 2,500명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불과 5년 후인 1566년, 전염병이 발생해 크라코 주민의 수가 줄어들었고, 1861년에는 이탈리아 통일 이후 크라코는 브리간드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1892년에서 1922년 사이에 1,300명이 넘는 크라코 주민들이 북미로 이주를 했고,

1963년에는 건물과 하수도 및 식수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하를 파헤친 결과로 산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1972년 크라코에 치명적인 홍수가 발생하고

1980년에 발생한 지진은 마을을 완전히 비우기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버려진 도시는 영화 촬영에 이상적이라 크라코는 2004년 유다의 자살의 배경으로 되기도 하고,

2008년 위안의 양자에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8. 펜실베이니아의 센트럴리아




미국의 이 버려진 도시는 독립전쟁 시대에 무연탄이 발견 된 도시입니다. 



이 지역의 석탄 개발은 1840년 경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센트렐리아는 1890년경에 2,761명의 주민과 7개의교회, 5개의 호텔, 27개의 잡화점을 갖추며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하였지만 1929년 월스트리트의 추락으로 센트럴리아의 많은 광산이 폐쇄되었고 1950년에는 인구가 1,986명으로 줄어들며 몰락했습니다. 



1962년 5월 센트럴리아 시 정부는 소각전문 회사에 마을 쓰레기 매립지를 불태워 청소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이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매립지의 불이 마을 아래에 위치해 있던  석탄 광산의 갱구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해 대규모로 2번의 진화를 시도하였으나 불을 끄지 못 하였고, 지방정부는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979년 센트럴리아의 주유소 사장이었던 존 코딩턴은 지하 연료 저장 탱크의 용량을 확인하는 용도의 딥스틱을 넣았다 뺏을 때 매우 뜨거운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실제로 저장고의 온도는 약 78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2년 후 1981년에는 12세 소년이 갑자기 뒷마당에서 열린 너비 1.2m의 싱크홀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소년의 사촌이 위기의 순간에 구한 싱크홀에서는 뜨거운 수증기와 치명적인 수준의 일산화탄소를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1983년까지 미국 의회는 센트럴리아 의 거주자를 이주시키기 위해 4,200만 달러 이상을 배정했고, 1990년에는 63명의 주민만 남게 됩니다.



2002년에는 미국 우체국이 셀트렐리아의 우편 번호를 폐기했습니다.



센트럴리아 아래의 불은 결국 이웃 마을 인 번즈빌로 확장되었고, 그 마을 역시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 불은 앞으로 250년 정도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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